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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환자와 제약사 간의 '장내 세균' 치료제 전쟁
- 작성일2019/03/1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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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 제약사 간의 '장내 세균' 치료제 전쟁
조선일보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2019.03.15 03:11 | 수정 2019.03.15 11:20미국에서 난데없는 '똥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대변 미생물 이식(fa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FMT)' 시술이 그 중심에 있다.
건강한 사람의 대변에 포함된 장내(腸內) 세균을 환자에게 이식해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지금까지는 의사들이 기증받은 대변을 환자에게
자유롭게 이식할 수 있었지만 최근 정부가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신약에 준하는 규제를 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제약업계에서는 신약으로 인정받으면 대변 이식이 다양한 질병 치료로 확대돼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본다. 임상시험을 거쳐
안전성과 효능이 입증될 수 있다는 점도 강조된다. 반면 환자들은 고가(高價)의 임상시험이 필수가 되면 결국 환자들의 부담만 늘어난다고 우려한다.
미국의 규제 정책은 향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의료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과연 똥은 의사의 시술 대상일까, 아니면 신약의 원료일까.
◇난치성 장염 90% 가까운 완치율 보여
대변 이식은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菌)'에 의한 치명적 설사병을 치료하는 데 쓰이고 있다. 다른 병에 걸려 항생제를 강하게 처방하면
인체에서 유익한 세균들까지 죽는 경우가 많다. 대신 디피실균 같은 악성(惡性) 세균이 증식해 극심한 장염과 설사 등을 유발한다.
미국에서는 매년 50만 명이 이 병에 걸린다. 보통 항생제로 치료하는데 20%는 약이 듣지 않아 매년 3만 명이 사망한다.
대변 이식은 이들에 대해 86%의 완치율을 보이고 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이미 2013년 대변 이식술을 신약으로 규제하기로 결정했다. 아직 규제를 실행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지금은 의사 책임하에 디피실균 감염 환자에 한해 가족이나 친구 중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기증받아 이식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마크 스미스 교수는 2012년 비영리 민간 대변 은행인 '오픈바이옴'을 설립했다. 기증받은 대변을
이식 가능한 형태로 가공해 환자들에게 실비만 받고 제공한다. 오픈바이옴은 지금까지 3.5t의 대변을 처리해 4만3000번 환자들에게 시술했다.
◇조 단위 시장 새로 만들어질듯
과학 발전은 이런 상황을 급속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최근 장내 세균이 암이나 당뇨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잇따라 밝혀졌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사람이나 물만 먹어도 살찌는 사람에게는 고유의 장내 세균이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심지어 우울증이나 자폐증, 치매도 장내 세균과 연관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은 앞다퉈 장내 세균을 치료제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기존 방식은 기증받은 대변에 식염수를 넣어 액체 상태로 만들고 환자에게 이식한다. 코나 입으로 주입하거나 내시경으로
대장에 직접 주입하기도 한다. 모두 환자에게 불편하다.
바이오 기업들은 장내 세균이 든 용액을 동결 건조해 캡슐 형태로 만들어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미국 케임브리지의 세레스 세라퓨틱스와
보스턴의 베단타 바이오사이언시스가 이 방법으로 만든 장내 세균 치료제를 시험 중이다. 대변 은행을 창설한 스미스 교수도
핀치 세라퓨틱스란 회사를 차려 장내 세균 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시장분석기관인 글로벌데이터는 디피실균 감염 치료제 시장이 2016년 6억3000만달러(약 7100억원)에서 2026년 17억달러(약 1조92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시장의 상당 부분을 대변 이식이 맡을 수 있다. 다른 질병 치료 효과도 입증되면 그만한 시장들이
계속 늘어날 수 있다. 시장이 커질 가능성이 커지자 미 FDA는 이제 대변 이식도 신약처럼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해야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환자들은 "제약사의 탐욕에 환자들이 시술에 접근하지 못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기존 신약 개발에서 보듯 대규모 비용이 들어가는
임상시험을 거치면 허가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허가 뒤에는 개발사에 독점 판매권을 줘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위장병학과 감염질환 전문가 40여 명은 최근 FDA에 재고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상황별 다른 기준 적용하자는 제안도
미국 메릴랜드대 의대 연구진은 지난해 똥 전쟁에 대한 일종의 휴전안을 제안했다. 먼저 의사들이 가족이나 친구들이 기증한 대변을
환자에게 이식하는 행위는 지금처럼 '의료 행위'로 규제 대상에서 제외한다. 두 번째로 오픈바이옴과 같은 대변 은행은
다른 인체 조직 은행과 같이 규제한다. 기증자가 행여 병원균을 갖고 있는지 더욱 철저하게 가려내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약사들이 치료용 장내 세균을 캡슐로 만드는 등 기존 이식술과 다른 방식으로 개발하면 신약과 같이 규제한다.
그러면 시장도 살리고 안전성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 고유 대변 은행도 추진 중
국내에서는 분당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등에서 대변 이식 시술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16년 디피실균 감염 환자에 대한
대변 이식술을 신의료기술로 인정했다. 하지만 대변 속 장내 세균의 가치가 그보다 더 크다는 점은 국내 학자들도 인정한다.
특히 국가별, 민족별로 식습관이 달라 장내 세균도 차이를 보인다. 그만큼 한국인 고유의 장내 세균을 연구해야 한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생물자원센터 이정숙 박사팀은 분당서울대병원, 바이오기업 천랩과 함께 2024년까지 건강한 한국인 800명의
대변을 기증받아 그 속의 장내 세균을 분석하는 '한국인 장내 표준 마이크로바이옴 뱅크'를 구축할 계획이다.
천랩은 장내세균의 유전자를 분석하고 이 박사팀은 장내 세균 배양법을 개발한다. 아무리 치료 효과가 좋은 장내 세균을 발견해도
배양하지 못하면 치료제로 개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이동호 교수는 "건강한 한국인의 대변에서
차세대 유산균이나 신약 물질들이 쏟아질 수 있다"며 "정부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선제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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